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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레몬서(Philemon) 개관

  빌레몬서(Philemon) 개관 1.    빌레몬서 저작연대와 장소 (The Written Date and Place of Philemon) 본 서신은 사도 바울이 로마에서 가택연금의 옥중생활을 할 무렵(61-62년, 참고: 사도행전 28:30-31), 오네시모를 위하여 빌레몬에게 보낸 편지입니다. 아마도 골로새서와 거의 동일한 때에 작성되었을 것입니다. 2.    기록목적 (Purposes of the Writing) 빌레몬의 종이었던 오네시모가 이곳 저곳을 방황하다가 바울이 연금되어 있던 로마에까지 이르고, 그가 감옥에 갇히게 되었는지 아니면 바울의 소문을 듣고 그가 갇힌 곳까지 찾아왔는지 불분명하지만 바울을 만나게 되고, 그를 통하여 그리스도의 생명의 복음을 전해 듣게 되었습니다. 이에 오네시모는 새 사람으로 변화되었는데, 바울은 오네시모를 그의 상전인 빌레몬에게 돌려보내면서 그를 위하여 자상한 편지를 쓰고 있습니다. 오네시모가 상전인 빌레몬의 집을 무단으로 떠난 것이고, 그 위에 빌레몬의 재물 중에 일부를 훔쳐서 도망친 것이기에 그가 빌레몬에게로 돌아갈 때 어떤 일이 벌어질지 예측할 수 없습니다. 이에, 바울은 종의 신분인 오네시모를 위하여 그가 현재 어떻게 바뀌어 있는가를 설명하고, 빌레몬의 사랑과 믿음에 호소하여 그를 용서하고 영접할 것을 당부하고 있습니다. 3.    주제(Themes) 빌레몬서는 그리스도인의 믿음과 이를 실천하는 사랑이 현실의 삶에서 어떻게 나타나야 할지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인은 형제 또는 자매를 용서와 영접하되, 형식적이고 외관상으로가 아니라 마음 중심에서 용서와 영접을 할 수 있어야 할 것입니다. 4.    개요 (Outline) 1:1-3    문안인사 1:4-7    빌레몬에 대한 감사 1:8-14    오...

그리스도 예수를 위하여 갇힌 자 (빌레몬서 1:1-3)

그리스도 예수를 위하여 갇힌 자 (빌레몬서 1:1-3)      1 신앙생활은 수단(手段)이 아니라 목적(目的) 하나님을 경배하고 찬양하는 것이 우리 신앙생활의 목적이 되어야 할 터인데, 좀 더 편한 세상 삶을 위한 수단이 되고 있는 것이 현실입니다. 이러한 현실감각의 믿음을 갖고 그들의 생각 안에서 예수님의 말씀도 해석합니다. 제가 즐겨 사용하는 마태복음 6장 33절을 보면,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현실 감각을 가진 교인에게 한글번역 “그리하면”이 참으로 매력적인 접속사(conjunction)입니다. 교회를 다니는 사람이 “먼저 하나님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할” 필요가 있는데, 왜냐하면 그렇게 해야지만 하나님께서 “먹고, 마시고, 입고, 생활하는 문제에서 축복을 주실 것이기 때문이다”라고 “믿고자” 합니다. “하나님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는 것”은 “현실 축복의 삶”에 한 조건이 됩니다. 즉, 그들에게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구하고자 함은 더 큰 매력인 현실에서의 만사형통의 삶의 비결이 여기에 있기 때문입니다. 즉, 이들에게 신앙생활은 현실 축복을 위한 수단이지 그 자체가 우선이요 목적이 되지 못합니다. 물론, 이러한 약속의 말씀 자체를 믿지 않아서 하나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는 삶 자체를 살지 않는 사람보다는 낫다고 해야겠지요?? 그러나, 이러한 오해의 소질을 유발한다는 면에서 한글성경의 “그리하면”(앞의 구절을 조건절처럼 해석하게 한)이란 말은 부적절한 번역입니다. 영어성경의 번역이 헬라어 원문에 더 충실한 번역인데, “Seek ye first the Kingdom of God and his righteousness, and all these things shall be added unto you"(KJV). 이것을  번역하면, "너희는 먼저 하나님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

빌레몬의 사랑과 믿음 (빌레몬서 1:4-7)

빌레몬의 사랑과 믿음 (빌레몬서 1:4-7)     1 신앙생활은 두 발 자전거 타기 성도의 신앙생활은 ‘두 발 자전거(Two-Wheel Bike)를 타는 것'과 같습니다. 두 발 자전거를 탈 때 페달(pedal) 밟는 일을 멈추면 자전거가 쓰러지듯이 성도가 ‘하나님께 기도하고 성도들 가운데 믿음과 사랑의 교제하는 일’을 멈추면 그 사람의 신앙은 정지하여 서 있는 것이 아니라 쓰러지고 맙니다. 그런데, 두 발 자전거 타는 사람은 금방 툭툭 털고 일어나서 페달을 밟으면 다시 빠른 속도로 달릴 수 있지만, ‘기도와 믿음과 사랑의 교제’라고 하는 페달 밟는 일을 중단하여서 쓰러진 사람은 다시 일어나서 그의 신앙의 두 발 자전거를 타고 달리는 일이 그리 쉽지 않습니다. 아니, 매우 어렵게 생각됩니다. 교회를 열심히 다니다가 한 주일, 두 주일 거르다가 혹은 아예 몇 달, 일 년 이상을 쉬었던 사람이 다시 교회를 찾는 일이 얼마나 힘든지는 경험해본 분들은 잘 아실 것입니다. 교회를 매주일 다니지만 하나님께 기도하고 성도 가운데 믿음과 사랑의 교제를 해본 적이 없는 사람이 이것을 처음 시작하는 일도 매우 힘듭니다. 그런데 이를 중단했다가 다시 재개함이 처음 시작하는 것 이상으로 힘든 것은 본인에게 왠지 쑥스럽고 가식적으로 느껴지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신앙생활의 두발 자전거의 페달 밟는 것을 노치는 일이 없게 해달라고 기도함이 필요합니다. 믿는 사람의 믿음의 정진은 끊임없이 배우고 자신의 삶을 향상시키고자 하는 자세에서 가능합니다. ‘나는 이만하면 됐지’ 하는 목회자나 성도에게는 신앙에 발전이 없습니다. 때로는 믿지 않는 사람들의 생활모습에서나 짐승에게서도 배울 것이 있습니다. 해서, 예수님은 뱀의 (간교함은 빼고) 지혜와 비둘기의 순결함을 배우라(마태 10:16)고 말씀하시고, 불의한 청지기의 (불의함이 아닌) 지혜롭게 셈하는 방법을 배우라(누가 16:8)고 말씀하십니다. 목회자나 평신도나 모두에게 신앙의 삶에 전진이 필...

내 심복 오네시모 (빌레몬서 1:8-14)

내 심복 오네시모 (빌레몬서 1:8-14)   1 대학교수와 조교 제가 경험한 미국대학의 교수들은 개인적으로 책이나 저널(journal)에 게재하기 위한 논문을 쓰는 일로 대학원생들인 조교(RA나 TA)에게 도움을 받았을 때 응분의 감사를 표시하거나 대우를 해줍니다. 그 도움의 정도 여하에 따라서 머리말에 감사를 언급하거나 도움이 감사 정도의 것 이상일 때는 책의 공동저자(co-author)로 이름을 올려주는 경우도 있습니다. 물론, 모든 교수들이 다 그런 것은 아니고, 이것이 웬만한 미국대학의 상식 있는 교수들의 경향입니다. 요즘 한국대학의 교수들은 어떤지 모르지만 (인터넷 상에 보도되는 내용으로 보아서는 별로 달라진 것이 없는 듯 보이지만), 10년-20년 전의 교수들은 (물론, 다 그런 것은 아니더라도) 상당수가 자기 밑에서 논문을 쓰는 대학원생들은 공적인 일 뿐 아니라 사적인 일을 시켜도 되는 존재로 생각했습니다. 조교에게 담배나 커피 심부름을 시키는 몰상식한 교수도 있었습니다. 조교의 입장에서 별로 심부름 해주고 싶지 않지만, 교수와의 관계가 불편해지면 손해를 볼까봐 마지못해 억지로 시키는 일을 감당합니다. 책을 쓸 때 그의 조교인 대학원생으로부터 상당부분 도움을 받거나 책의 한 두 장(chapters)은 실질적으로 조교에 의하여 쓰여진 것이 사실인데도 그 조교의 이름은 어느 곳에도 언급되어 있지 않습니다. 조교에게 그의 연구논문이나 저서를 위해서 일을 의뢰할 때도 이것은 부탁이 아니라 명령입니다. 만일 조교가 교수의 연구나 저작에 비협조적일 때는 상당한 불이익을 당하는 일이 종종 있습니다. 오래된 얘기입니다만, 한국 경제학계의 어느 유명교수가 유명원서를 번역하는데, 자신이 번역한 부분은 단 한 줄도 없습니다. 상당부분은 조교들에게 명령하여 공짜 아니면 거의 헐값으로 번역된 것이고 또한 일부분은 경제연구소의 연구원들에게 번역비를 제공하면서 의뢰를 하여 번역된 것입니다. 그러나, 결국 번역서(飜譯書)는 전적으로 타인에 ...

오네시모를 영접하라 (빌레몬서 1:15-17)

오네시모를 영접하라 (빌레몬서 1:15-17)                                                                               1 “영접”의 미학 어떤 분이 “좋은 이웃이 되기 위한 5가지 제안”을 해놓았습니다. 첫째, 영접(환영)하라. 영접(환영)의 말을 하는 것만큼 사람들을 좋게 하는 것은 없다. 둘째, 웃음으로 대하라. 찡그리는데는 74개의 근육이 필요하지만 웃는데는 14개의 근육만 있으면 된다. 셋째, 진정으로 사람들에게 관심을 가지라. 하려고만 하면 모든 사람을 좋아할 수 있다. 넷째, 다른 이들의 감정을 고려하라. 그리하면 고맙게 생각할 것이다. 다섯째, 다른 사람의 견해에 신중하라. 논쟁에는 나의 것, 다른 사람의 것, 올바른 것이 있음을 기억하라. 어떤 사람의 집을 방문하였는데 그 집 주인이 보는 둥 마는 둥 하면 기분이 별로 유쾌하지 않을 것입니다. ‘내가 별 것 없다고 저 사람이 나를 무시하는구나’ ‘내게 무슨 감정이 있어서 저러나’ 등등 여러 가지 생각이 들 것입니다. 그러나, 집 주인이 두 팔을 벌려서 나를 영접하면, 그에게 나의 마음이 열려짐을 경험합니다. 사람들은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마음 속에서는 누구나 특별한 ...

내가 갚으리라 (빌레몬서 1:18-20)

내가 갚으리라 (빌레몬서 1:18-20)                                                                                  1 빚의 청산 신용카드의 엄청난 빚으로 인하여 신용불량자가 되고 급기야는 빚을 갚지 못하고 파산하는 경우가 한국과 미국 등 많은 신용카드의 편리를 누리는 나라들에서 발생합니다. 얼마 뒤에는 갚을 수 있을 것 같아 급한 대로 우선 카드를 사용하지만 그것이 쌓이고 쌓이면 눈덩이처럼 불어나 도무지 어쩌지 못하는 지경까지 이릅니다. 해서, 요즘은 빚 청산(‘Debt disappears')을 전문으로 하는 직업의 에이전트(agent)까지 등장했습니다. 채무자가 빚을 지고 있는 신용기관과 빚 협상을 하여 얼마정도 할인해주거나 변제기일을 연장해주고 일정의 수수료를 챙깁니다. 그러나, 이것은 온전한 빚 청산이 되지 못하고 그 채무자를 찜찜하게 하고 결국은 신용불량자의 불명예를 항상 지니고 다니게 합니다. 그런데, 그게 아니라 채권자가 모든 빚을 아무 조건 없이 탕감해주거나, 다른 사람이 빚 전체를 아무런 요구조건 없이 대신 갚아준다면, 이는 참으로 그 채무자로 하여금 홀가분한 마음을 누리게 할 것...

들은 것보다 더 행하는 성도 (빌레몬서 1:21-22)

들은 것보다 더 행하는 성도 (빌레몬서 1:21-22)                                                                           1 하나를 듣고 열을 행하는 사람들 공자님은 “학이시습지(學而時習之)면 불역열호(不亦說乎)아?”라고 말씀했습니다. ‘배운 것을 반복하여 복습하면 기쁘지 아니하냐?’라는 뜻입니다. 배운 것이 내 것이 되기 위해서는 (반복하여) 직접 해보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리할 때, 배운 것은 한갓 머리 속의 지식으로만 존재하지 않고 나의 삶에 원동력이 됩니다. 맹자님은 군자에게 세 가지 기쁨이 있는데 첫째는, “부모가 모두 살아 계시며(父母俱存), 형제들에게 별 탈이 없는 것이요(兄弟無故),” 둘째는, “하늘을 우러러 보아 부끄러움이 없으며(仰不愧於天), 아래로 굽어보아도 사람들에게 부끄러움이 없는 것이요(俯不怍於人),” 그리고 셋째는, “천하의 영재를 얻어(得天下英才) 그를 가르쳐 훌륭한 인재로 만들어 내는 것이라(而敎育之)”고 말씀했습니다. 천하의 영재가 어떤 사람입니까? 하나를 들으면 열을 깨닫는 사람입니다. 여기서 깨달음은 실천할 것을 전제로 하는데, 그가 하나를 듣고 열을 알뿐만 아니라 이를 실천하고자 할 때 그는 자신뿐...